2018. 3. 29. 21:28ㆍ잡동사니
항상 우린 정의를 목에 힘주어 부르짖는 어른들을 본다.
이미 아이들의 눈에는 나도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바른 것은 옳은 것이고 그 옳은 길을 가지 않는 것은 틀
린거라는 이야기를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화를 내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전에 했었
남의 집 제사에 가면 항상 조율이시, 홍동백서 들 외운다
조금만 순서가 틀리면 교통사고라도 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時祭( 시제 ) 혹은 奠祀 ( 전사 )를 가보
면 그런 것보기 싫어서일까? 젊은 사람들이 없다. 가장
어린 자가 불혹이 훌쩍 넘어 있다.
6살때 육십갑자를 집다가 칭찬받은 아이가 죽을 때까지
육십갑자를 외우는 것을 보고 육갑떤다는 말이 나왔다고
하던가? 뭐가 다른가.. 세상은 나날이 변해가는데 몇가지
자신이 아는 것을 세상의 진리의 전부인냥 알고 살아간다
도덕경의 첫 구절인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는 '도
라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란 이야기다.
( 이를 '도를 도라 부르면 이미 도가 아니다' 라고 해석하기
도 한다 ) 그 옛날 도에 대해 논한 책의 첫 구절이 이 말이
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
먼 훗날 너희들 도를 이야기할 때 도에 대해 논한 이 책의
내용 하나 하나까지도 언젠가는 도가 아닐 수 있다는 걸 명
심하라는 이야기다. 하물며 우리가 경전 내용처럼 알고 다
툼을 벌이는 어린 시절 육십갑자의 순서보다 짧은 제사 용
어 몇 가지, 세상의 이치라는 것들에 얽매여 서로 다투고
성냄이 맞을까?
오래된 먼지 풀풀 날리는 책일 것같은 책 첫 구절이 너무 멋
있어서, 그 첫구절 때문에 도덕경이 좋아졌다. 세상에 새로운
것도 없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던 한
때 없으면 못 살 것같던 사랑도 콩껍질이 사라지면 바라보기
영 부담스런 존재들이 되어 있듯, 옳다고 생각하고 따르는 온
갖 PR 과 포토샵, 화장으로 범벅된 사람들의 진면목을 알게
될 날도 올 것이다. 그 정의라고 알고있는 콩깍지들를 벗음이
선행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안 되는 걸 굳이 벗을 필요도 벗길
필요도 없다. 그 또한 도가 아니다. 물이 흐르면 씻기어 내려
가듯 변해갈 것이다. 이미 젓갈이 된 오징어는 씻어도 젓갈이
다. 성낼 필요도 가르칠 것도 없다.
세상의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변화의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갈 세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가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
다. 다툼이나 성냄으로 점철된 세대가 가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세대가 왔으면 한다. 서로 스트레스 받으며 메뉴얼대로
존중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존중하며 가슴 설랠 수 있는 세
상을 꿈꾸는 것이 현재, 내 나름의 세상의 도를 바라보며 바
라는 방식이다.
그냥 노래가사들 처럼 무심하게 욕심없이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