墜茵落溷 ( 추인낙혼 )

2013. 8. 21. 09:20잡동사니






縝在齊世, 嘗侍竟陵王子良. 子良精信釋教, 而縝盛稱無佛

子良問曰:「君不信因果, 世間何得有富貴, 何得有賤貧?」

縝答曰:「人之生譬如一樹花, 同發一枝, 俱開一蔕,

隨風而墮, 自有拂簾幌墜於茵席之上, 自有關籬牆落於糞溷之側.

墜茵蓆者, 殿下是也;落糞溷者, 下官是也.

貴賤雖復殊途, 因果竟在何處?」

子良不能屈, 深怪之. 縝退論其理, 著神滅論


                                                               - 梁書  儒林傳 南史

                

 

제나라에 사는 범진 ( 范縝  )이라는 자가 . 경릉왕 소자량 (蕭子良) 

을 모셨다.

자량은 불교를 성심껏 믿었으나 범진은  강하게 부처는 없다 하였다.

 

이에 자량이 물어 가로되 

 

 " 너는 인과를 믿지 않는다면 세상에 어찌 부유함과 귀함이  있으며

   어찌 천하고 가난함이  있는 것이냐"

 

범진이  대답하여 가로되 

 

 " 사람의 삶은 한 그루의 꽃과 같다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에서 같이 생겨 한 봉우리에서 피지만  바람에 날리어 

   혹자는 수렴에 스쳐 방석위에 떨어지는 것도 있고  

   혹은 담이나 울타리를 넘어 화장실옆에

   떨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방석에 떨어진 꽃잎은  전하시고  화장실에 떨어진 꽃잎은  저입

   니다.

   귀하고 천함이 비록 다른 길이지만  인과가 도대체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소자량이 굽힐 수 없어 심히 이를 괴이하게 여기니

   범진이 관직을 물러나 그 이치를 논하며 신멸론을 지었다 

 

 

 

 범진의 추인낙혼은 무신론을 주장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님 왕이나 범진이나 한 가지  꽃잎이다에 촛점을 맞춘 것일까?

 

 맛있는 음식, 좋은 옷, 맛있는 음식, 좋은 집으로 귀함을 천함을 나눌 

 것인가?  아님 건강함으로 11자 혹은 식스팩으로?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구분은 수 천  수 만가지를 넘어 셀 수 없는 

 단계까지 가 있는 지도 모른다. 귀천을 논함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같다.

 날 때부터 눈먼 자를 인과로 논하지 않는 것과 귀천을 인과로 논하지 

 않음은  같은 것이 아닐까?

 

 

 겉의 귀천과 속의 귀천

 

 

 내가 그 분류에서 어디쯤 있고,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고가 중요한 것

 이  아닐 것이다.

 방석 위에 있어도 꽃잎이고 더러운 곳에 있어도 꽃잎인 것이다.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임에도 자신을 오리라고 자학하며 살았던 것처럼 화

 장실 옆에 떨어진 꽃잎이  자신이 화장실이 아닌 것을  깨닫는 것이 중

 요한 것일 것이다 

 어느 덧 세상에서 본질이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 점점 힘들어지는 이

 유는  본질보다 포장법에 더 신경쓰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지

 

 

 아마 범진이 말한 것이 단순히 기회를 만난 사람과 못 만난 사람을  비

 유한 것만이 아닐 것이다. 결국 우리의 마음의 위치가 어디인가가  가

 장  중요하지 않을까?

 내 겉이 세상 분류표상 어디에 있을까가 아니라 

 내 영혼은 영혼 분류표상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야 할 것같다.

 

 결국 내 겉모습은 창공을 훨훨 날기위해 언젠가 벗어 던져야 할 나비의 

 껍질에 불과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