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8. 05:36ㆍ잡동사니
다윈의 진화론을 보면
인간은 처음엔 네 발로 달리고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립을 하고 두 발로 걷고 달린다
덕분에 인간은 머리가 커지고 더 머리를 잘 쓰게 되었다 한다
신기한 것은 네 발로 달리는 것이 두 발로 달리는 것보다
빨랐을 텐데 속도를 포기하면서까지
인간은 두발로 다니기 시작한다
우리가 배웠던 적자생존은
기린이 더 높은 나무잎을 먹기 위해 목이 길어지고
더 수영하기 편할려고 발에 물갈퀴가 생기고
그리고 이렇게 남들보다 우월한 특징으로 무장된
적자만이 생존한다는 이론이었는데
인간은 반대의 적자생존을 선택한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분명 신체적인 면에선
자연에서 적자는 아니다
비록 다른 동물도 혼자서는 생존하기 힘들지만
다른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순식간에 걷고 달린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걷고 달리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 . 혼자서는 어미에게 매달려 있지도 못한다.
표면적인 물리적 힘으로
곰 사자 호랑이는 고사하고
우리가 마트에서 틈만나면 사먹는 소 돼지보다
우린 강하지 않다.
그런데 우린 자연 생태계에서
가장 상위 포식자로 자리 매김하고
최고 상위 적자로 생존한다
무슨 이유인지
더 빨라짐을 포기함으로
직립을 하게되고
손으로 도구나 무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로 우리보다 더 힘센 동물을 사냥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는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길 좋아한다.
다른 동물이 불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 물론 우린 동물과 통하는 언어를 갖고 있지 않으니 )
대한민국은 요즘 갑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시끄럽다
땅콩회항이니
백화점 알바 무릎꿇리기
제네시스 삼단봉
이마트 VIP 등등
자본주의의 갑은 당연히 자본이 축적된 기업가들이나 부자들이다
그들이 세렝게티의 사자나 표범일지 모른다
인간이 동물에게 그렇듯
그들은 나머지 인간에게
최고의 포식자이고
만물의 영장들의 영장인 것처럼 군림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앞에
최초의 직립유인원 하나가
네발로 달아나는 것을 포기하고
직립해서 지켜 본것처럼
을들이 움직이지 않을까?
뭔가 모르지만 적자생존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가
아닌 내 안에서 무언가 포기했을때
얻는 힘으로 얻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최초의 직립인류가 포기했던 앞발을 통해 얻었던
그 많은 이득보다 우리는 월급봉투가 더 중요한 자들이
되어있다. 우린 월급봉투를 포기하면 한 시도 살수 없는 자들이
아닌가
그 포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어찌보면 인간은 더 이상의 진화를 포기했는지 모른다
직립으로 얻은 큰 머리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아
다시 작아지고 있고
어느덧 인간은 머리작은 사람을 부러워한다
어쩌면 현세대 인간에게 적자생존의 판단기준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에
사진올리는 걸로
판단되는 세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 기준이라면 난 이미
적자가 아니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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