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차트글씨

2015. 2. 27. 23:39잡동사니

서점에서 류시화씨의 시집을 하나사서 집으로 오는 도중에

문득 내 젊은 시절 군대 생각이 떠올랐다


군복무시절 에서  난 중대에서 차트글씨를 담당했었다

지금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순식간에 해치울 일이지만

내가 복무하던  군 시절엔

일일히 손으로 문서도 교육용 프리젠테이션용 차트도 

삼각자 두개 혹은 큰 T자와  필기구 ( 수성매직 혹은 네임펜, 볼펜 ) 로  모두 작성했었다.


일병 상병시절엔 훈련준비를 위해선

매번 밤을 꼬박 새우면서 글을 써야했다. 

교육현황판도, 각종 교보재 신청서류도

소대별 작전지도에도 

내 글씨가 들어 가곤 했다.


병장때 부사수가 들어오고 나선

모든 차트를 부사수에게 맡기고

난 편지를 차트글씨로 작성하곤했다.

한석봉어머니가 불끄고 떡을 썰고 한석봉이 글을 쓰듯

난 류시화의 시를 차트로 써 편지를 작성하고

내 부사수는 문서를 차트로 쓰곤 하였다


내 사수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치 사자가 자식을 벼랑에서 떨어트리면

기어오를거란 믿음처럼

신기하게도

그 전에 한번도 문서를 차트글씨로 써본 적이 없던

 나도, 내 부사수도

자신만의 서체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신기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처음엔 중대장이  그의 눈에 익숙치 않은 내 부사수의 서체를 싫어해서

나에게 차트문서 작성을 계속 하라고 했지만

그리멀지 않아

다행히 난 일병이후 한번도 안나온 휴가를 몰아쓰며

그 명령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났고

내 부사수는 자연스럽게 차트병사수가 되고 말았다.


잠시동안 아주 잠시동안이지만 

누군가에게 차트글씨로 글을 적어 

편지로 보내던

그 시절이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치기어린 그 20대시절에 주고받던

그 편지의 내용은 어리고 어렸었지만

그 내용보다 서로의 생각을 기다리던

그 사나흘의 시간이

좋았던 것같다.


카톡으로 " 뭐해? " 라고 했는데

사흘후  " 그냥 있어 " 라고 답장이 온다면

우울하겠지만 

초간단 초스피디한

현대적 커뮤니케이션시대에

고목의 옹이에서 나는 새싹보다 

더 힘든 일이겟지만

올드패션의 커뮤니케이션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요즘도 편지를 쓰고 기다릴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에게 보내는 글을 쓰기 위해 

삼각자 두개를 한번 다시 잡아볼까하는 생각을 

운전중에 잠시 해보았다.


물론 그럴만한 엔진이 내 속에 남아있지 않음을 알기에

내일이면 그냥 잊고 말 생각이 될 것이다는 생각도

같이 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