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2017. 7. 12. 10:47ㆍ잡동사니
밥에서 김이 피오르는 것을 보며
인생의 화양연화는
저 김처럼 그냥 곁을 스쳐 지나갔으리란
사실을 문득 느낀다
잡을 생각도 없었고
잡아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어쩌면 알았기 때문일까
숟가락 가득 떠서
숨조차 쉬지 않고 먹던
그 시절
산해 진미라 해도
그 맛조차
느끼지 못했었고
수많은 계절 재료들의
풍부한 향을 구별조차 못했다
이제 하나 둘 그 향을 구별하게 되었을 때는
진공 밥청소기는 딱 고장나 버렸다.
그림의 떡이 아니어도
그림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되어가고
신들이 음식들을 흠향하듯
벌써 난 예행연숩을 하고 있는건가..
아버지가 자랑하시던 이야기들
어린시절 소 끌고 풀 멕이러 가던 이야기
수 많은 형제 틈에서 자라
울다 보면 먹을 것도 없었다는 이야기...
해병대 의장대 이야기,
휴가 때 가져 오셨던 미군 오렌지 이야기
총각시절 배웠던 마작이야기, ........ 하지만
왠지 최근 것들 중엔 자랑하실 게 없으신가 보다.
아주 오랜 시절이야기만 하신다
나 빼고 나면 아무도 들어줄 사람도 없을텐데..
나에겐 다 이야기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손자 손녀에게만 이야기하신다.
아버지 밥공기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매 끼니 끼니
새로운 밥을 맞이 한다.
식기 전에
김이 다 날라가기 전에
먹으려 한다
양껏 먹을 수는 없겠지만
항상 내 곁에는 갓 지은 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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