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1. 23:47ㆍ잡동사니
아들과 조용한 커피 전문점에 들어갔다. 마침 손님이 하나도 없는
것이 너무 좋았다. 머리가 벗겨진 그 나이 많은 사장님에게는 무척
안 좋은 일이겠지만 그는 그런 것정도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표정이
다. 새옹인가?
프론트에 계신 시니어 바리스타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아
들녀석을 위한 딸기 스무디를 시킨다. 지갑속에 있는 카드를 꺼내 내
민다.
음악조차 틀지 않은 그 카페에서 살짝 그 조용함을 즐기며 뒤를 돌아
보는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와 함께 5명의 아
저씨들이 들어온다. 상기된 얼굴빛으로 보아 어디선가 일요일 저녁 모
임에서 이른 술 한잔씩을 하셨나 보다. 물론 잠시동안 내가 즐기던 그
가게의 조용함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나 버렸다.
분명 누군가 그들 중 한 명이 이들에게 커피 한잔을 하고 가자고 이끌
었을 것이고 그들은 그를 따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그들
중 한 둘은 아직도 알콜이 모자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약국에서
당근파냐고 묻는 토끼처럼 그 중 한 사람이 외쳤다..
" 사장님 ... 여기 소주 파나요? "
바리스타와 사장 모두 그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그 가게 안에
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는지 사장의 얼굴에 감정
변화조차 느낄 수 없다..도인인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5명 중 한 명은 화장실 문고리를 잡으며 비틀거린다.사장이 잠시 그를
부축하여 화장실 문을 열어준다.
한 명의 남자는 트롯트 가수에 대해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한 명은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키듯 커피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그 중 한사람이 별안간 말했다
" 난 믹스커피가 먹고 싶다 . 믹스커피는 안 파나 여기? "
내가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 전 창가에 놓인 컴퓨터 앞으로 가서 마우스
를 살짝 움직였다. 갑자기 사장이 컴퓨터 옆으로 왔다. 난 그에게 물었다
" 컴퓨터 사용하실 건가요 ? "
사장은 대답대신 고개만 좌우로 저었다..
그 틈에도 그 다섯 아저씨들은 아직 시킬 것을 정하지 못했고 아들 녀석
은 휴대폰으로 창가옆 컴퓨터옆에 놓인 작은 화분의 선인장을 찍고 있었
다. 그 커피 전문점이 마음에 든다나... 난 마음이 바뀐지 오래되었는데
말이다.
사장이 커피를 내어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영수증과 카드가 들려 있었
다. 그 시끄러운 아저씨들 신경쓰느라 카드 받는 것도 잊고 있었나보다..
한 명이 말했다
" 내가 영어는 좀 안다 "
가게 밖으로 나오기 전 내가 들은 그들의 마지막 대화였다
이 글을 더 이어가기 위해선 그냥 더 그 곳에 있었어야 하는데 난 카드를
지갑에 꽂은 후 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안녕히 가시라는 주인의
소리는 내가 가게문을 닫으며 내 귓가에서 잘리었다. 난 그 인사를 채 다
듣기도 전에 커피전문점 밖으로 나와버렸다. 튕겨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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