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17. 3. 31. 09:45뮤지컬/詩



그 러 니 

그대


사라지지 

말 아 라




                                                   박노해 시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렬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희망은 절망가운데 잉태된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절망의 시간이 짧거나 없기를 소망한다


희망과 소망 

다른 듯 같은 말.. 

보이지 않는 불빛은 사실

우리 눈이 어둡기 때문인데

밖에서 빛을 찾으며

빛이 안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절망한다


내 안에 불타는 화롯불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말이다.

어쩌면 세상의 빛은 

우리가 발하는 빛의 반사된 반사광인지 모른다

우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는 자들 아닌가


혹시 너무나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밝은 빛을 본다면

한번쯤 고민해야 한다.

거울은 아닌지........내 뜨거운 욕심의 반사체는 아닌지.....




박노해 시인의 시집에서 이 시를 읽기 위해선 

무려 551 페이지를 넘겨야 제일 마지막에 위

한 이 시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절

했지만 곧 난 명랑하게 그냥 시집를 뒤에서

부터 읽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난 이 시를 결국 내 멋대로 제일 먼저 

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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